정보접근권은 장애인 정치세력화의 출발점이다
여론을 형성할 권리가 민주주의를 완성한다
- 기자명칼럼니스트 김경식
- 입력 2026.07.28 17:31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민주주의는 투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은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타인과 의견을 나누며, 공론을 형성하고, 그 결과를 정치에 반영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만들어 간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는 '정보'가 있다. 정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힘이며,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따라서 정보접근권은 단순히 정보를 읽고 이용하는 권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정치참여권을 실현하는 기본권이다.
장애인에게 정보접근권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 사회는 이동권과 교육권, 노동권, 자립생활권 보장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지만, 장애인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정보접근권은 여전히 복지서비스의 일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보접근권은 편의를 제공하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장애인을 민주주의의 주체로 세우는 시민권의 문제이다.
민주주의에서 여론은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이해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정책자료를 읽고, 언론보도를 접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곧 여론 형성이다. 장애인이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공론장에 참여할 기회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보에서의 배제는 여론 형성에서의 배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정치참여와 정치적 대표성의 약화로 연결된다.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정치인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사회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공동의 정책 의제를 설정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책결정 과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민주적 과정이다. 이러한 정치세력화의 출발점 역시 여론 형성이며, 여론 형성의 전제조건은 바로 정보접근권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이러한 관계를 이미 명확히 보여준다. 제9조는 접근성을, 제21조는 정보접근과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29조는 정치 및 공적 생활에의 참여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한다. 이는 접근 가능한 정보가 보장되어야 자유로운 의사 형성이 가능하고, 의사 형성이 시민적 여론으로 발전하며, 그 여론이 정치참여로 이어질 때 비로소 장애인의 실질적인 시민권이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장애선진국들은 이러한 철학을 정책으로 구현하고 있다. 스웨덴은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한 것은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라는 원칙 아래 정부 정책자료를 쉬운 정보(Easy Read)로 제공하고 장애인단체가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도록 제도화하였다.
영국은 「Equality Act 2010」과 「Elections Act 2022」를 통해 접근 가능한 선거정보와 투표환경을 보장하고 있으며, 미국은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ADA)」와 「Help America Vote Act(HAVA)」를 기반으로 접근 가능한 투표기기와 디지털 정보 제공을 확대하였다. 유럽연합(EU)도 「European Accessibility Act」와 「Web Accessibility Directive」를 통해 공공정보의 접근성을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로 제도화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정보를 제공하는 정부'가 아니라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드는 것이다. 접근 가능한 정보는 장애인의 정책 이해를 높이고, 사회적 토론을 촉진하며, 장애인단체의 정책 제안과 조직화를 활성화한다. 정보접근권은 결국 시민적 여론을 만들고 정치세력화를 가능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사회적 인프라인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정보통신과 의사소통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며, 「지능정보화 기본법」과 정부의 디지털 포용정책을 통해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와 웹 접근성 향상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와 공공서비스의 디지털 접근성 강화 등 긍정적인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은 아직도 정보접근권을 '서비스 이용의 편의'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는 정책의 목표를 공공서비스 이용에서 민주적 참여로 확장해야 한다.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보를 이해하고, 토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며,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보접근권의 본래 목적이다.
국내외 연구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김용득의 연구에 따르면 "정보접근권을 장애인의 시민권과 사회참여를 실현하는 핵심 권리로 설명하였고", "김도현은 장애인의 정치적 대표성과 당사자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보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실질적 접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해외에서는 "Lisa Schur와 Peter Blanck 등이 접근 가능한 정보환경과 선거환경이 장애인의 정치효능감과 정치참여를 높인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정보접근권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정책자료를 쉬운 언어로 바꾸고, 음성과 문자, 수어와 자막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며, 개인의 장애 특성에 맞는 정보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반대로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AI는 새로운 정보격차와 민주주의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 정보접근권은 웹 접근성을 넘어 AI 접근성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시민권으로 발전해야 한다.
앞으로의 정책은 분명해야 한다. 정부의 모든 정책자료와 입법예고, 선거공보는 쉬운 정보(Easy Read), 수어통역, 자막, 음성자료, 점자, 보완대체의사소통(AAC)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어야 한다. 장애인단체가 정책과 디지털 플랫폼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공동 거버넌스를 제도화하고, 인공지능 기반 공공서비스는 'Accessibility by Design'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의 정보접근 수준과 여론 형성, 정치참여 수준을 국가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정보에 접근하는 권리는 결국 여론을 형성할 권리이며, 여론을 형성할 권리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갈 권리이다.
장애인의 정치세력화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보를 접하고, 사회를 이해하며,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형성하며, 공동의 의제를 만들고, 정치를 변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정보접근권이 있다.
정보접근권은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다.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민주주의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은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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