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은 나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다
서울시 버스정책이 던진 질문, 누구를 위한 교통복지인가
- 기자명칼럼니스트 김경식
- 입력 2026.06.25 17:33
【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서울시가 70세 이상 시민에게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요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대신 확보되는 재원을 활용해 버스 이용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초고령사회에 대응해 노인의 이동권을 확대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책에는 처음부터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현재 도시철도 무임승차는 노인과 장애인이 함께 이용하는 대표적인 교통복지 제도이다. 그러나 버스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통복지 정책에서는 노인만 새로운 수혜자가 되었고 장애인은 기존 제도에 그대로 남겨졌다. 같은 제도의 대상이었지만 정책이 확대되는 순간 장애인은 사라졌다.
서울시는 이를 노인 교통복지 확대 정책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비켜간다.
교통복지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교통은 단순히 요금을 할인하는 복지사업이 아니다. 사람을 이동하게 하고 사회와 연결하며 교육과 의료, 고용과 문화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회 인프라이다.
특히 장애인에게 이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동은 자립생활의 전제이며 사회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권이다. 그런데 이번 정책은 이동의 어려움보다 연령을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교통정책은 원래 나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이동을 지원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정책의 기준도 "몇 살인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이동하기 어려운가"가 되어야 한다.
70세의 건강한 노인이 자유롭게 버스를 이용하는 것과 40세의 뇌병변장애인이 저상버스를 기다리고 여러 차례 환승하며 이동하는 것 가운데 누구의 이동 부담이 더 큰지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이동의 어려움은 나이가 아니라 기능의 제한과 사회적 환경에서 결정된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가장 이동이 어려운 사람보다 일정 연령에 도달한 사람을 먼저 정책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교통정책이라기보다 연령정책이며, 이동권 정책이라기보다 인구정책에 가깝다.
국제사회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의 교통정책은 이동제약자(People with Reduced Mobility, PRM)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여기에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임산부, 일시적으로 이동이 어려운 사람까지 포함된다. 기준은 연령이 아니라 이동의 어려움이다.
영국의 전국 버스 무임승차 제도 역시 국가연금 수급 연령 이상의 고령자뿐 아니라 일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런던의 '프리덤 패스'는 고령자와 장애인을 각각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이동권 체계 안에서 지원한다.
독일은 더 나아가 중증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을 노인복지의 일부가 아니라 장애인의 권리로 접근한다.
유럽연합 역시 장애인의 이동권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접근 가능한 교통서비스 제공을 국가의 책임으로 명시하고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노인은 고령화 정책으로 지원하고 장애인은 이동권 정책으로 지원한다. 두 정책은 경쟁하는 복지가 아니라 병행되는 권리보장 체계이다.
또한 OECD 산하 국제교통포럼(ITF)은 접근 가능한 교통체계가 장애인과 고령자의 사회참여를 확대할 뿐 아니라 고용, 소비, 관광 등 사회 전체의 경제적 편익을 높인다고 분석한다. 접근성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것이다.
영국의 연구도 흥미롭다. 무료 버스패스 제도가 있음에도 65세 이상 고령자의 상당수는 대중교통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요금이 아니라 접근성 부족과 이동환경의 한계에서 찾았다.
결국 요금을 무료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이동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놓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이번 논란은 서울시 정책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장애인복지의 구조적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은 장애를 독립적인 사회적 위험으로 접근하기보다 노인복지 체계를 기준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연금이다. 중증장애인은 18세부터 64세까지 장애인연금 기초급여를 받지만 65세가 되면 장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기초급여는 종료되고 기초연금 체계로 전환된다.
급여 수준 역시 오랫동안 기초연금 수준과 연동되어 조정되어 왔다. 장애인의 추가 비용과 소득 상실을 중심으로 설계되기보다 노인복지 체계가 사실상의 기준 역할을 해온 것이다.
교통복지도 다르지 않다. 지하철에서는 노인과 장애인이 같은 정책 대상이었지만 버스에서는 노인만 새로운 수혜자가 되었다. 기준은 함께였지만 확대는 노인부터였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여전히 노인복지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장애와 노령은 결코 같은 개념이 아니다.
노인은 생애주기의 한 단계이지만 장애는 연령과 무관하게 지속되는 기능 제한과 사회적 장벽의 문제이다. 장애인은 이동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한다. 저상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환승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장애인콜택시와 활동지원서비스를 함께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통비는 단순한 이동 비용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되는 비용이다. 그렇다면 교통복지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많이 걷는 사람보다 걷기 어려운 사람에게, 쉽게 환승하는 사람보다 환승이 어려운 사람에게, 혼자 이동할 수 있는 사람보다 이동 자체가 제약받는 사람에게 먼저 지원이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교통정책의 존재 이유이다.
서울시는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몇 살부터 무료로 탈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가장 이동하기 어려운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이 교통정책의 출발점이다.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갖게 되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동의 제약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속되는 현실이다.
교통정책이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순간 이동권은 복지가 되지만, 이동의 어려움을 기준으로 하는 순간 이동권은 비로소 권리가 된다.
서울시의 버스 정책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버스를 무료로 탈 사람을 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가장 이동하기 어려운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교통은 나이를 지원하는 정책이 아니다. 교통은 이동을 지원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연령이 아니라 이동의 어려움이어야 한다. 그것이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교통정책의 원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