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에서도 증명해야 하는 사람들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용지 도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든 활동가들. ⓒ한국피플퍼스트
【에이블뉴스 원선애 칼럼니스트】6·3 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5월 29일, 대통령의 사전투표 현장 앞에 피켓이 섰다. 발달장애인 인권단체의 그림 투표용지 제작과 투표보조원 도입 요구다. 현장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방법을 강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고 민간 로켓이 화성을 준비하는 시대에 어떤 시민은 아직 투표소 문턱을 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설명해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반응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나 동시에 씁쓸했던 것은,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조차 발달장애인의 투표 문제가 여전히 ‘검토할 사안’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은 법적으로 존재한다. 2025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역시 이러한 현실을 단순한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 침해’의 문제로 바라봤다.
당시 재판부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의 투표보조 요구를 받아들이며, “발달장애인은 투표소 같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인지 및 행동에 일상생활보다 더 어려움을 겪어 스스로 정확하게 투표하기 어렵고, 투표보조의 도움을 받아야만 자신의 의사에 부합하는 투표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가가 발달장애인에 대한 투표보조를 거부한 행위에 대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간접차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문 문장을 읽으며 오히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누군가는 법원까지 가서 겨우 인정받아야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투표소는 여전히 조건부다. 혼자 기표할 수 있는가. 후보 이름을 읽을 수 있는가. 정당을 이해하는가. 누가 옆에서 영향을 주는 것 아닌가.
이 질문들은 이상하리만큼 발달장애인에게만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정치에 무지한 비장애인은 아무도 검증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유튜브 쇼츠 몇 개로 정치 판단을 하는 유권자는 아무 검증도 하지 않으면서, 평생 복지제도와 행정기관의 이름을 몸으로 외우며 살아온 발달장애 가족은 정치적 의사능력을 의심받는다. 그래서 때로는 발달장애인에게 선거란 민주주의보다 선별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 있다. “부모가 대신 찍을 수 있잖아요.” , “대리투표 위험이 있잖아요.”
물론 이 우려를 가볍게 볼 생각은 없다. 공직선거법상 대리투표는 명백한 위법이며, 보호자가 대신 기표하는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비밀선거 원칙 역시 민주주의의 실질적 가치다. 그러나 묻고 싶다. 왜 유독 발달장애 가족에게만 민주주의의 순수성을 이토록 엄격하게 요구하는가.
부부는 서로 정치 이야기를 하고, 부모는 자녀의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 알고리즘과 포털 뉴스 배열은 하루 종일 사람들의 정치적 편향을 공고히 하고, 종교단체와 언론과 커뮤니티는 끊임없이 정치적 중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유독 발달장애인 부모만 ‘영향력을 행사할 위험한 존재’가 된다.
한발 더 나아가 묻고 싶다. 정치권 일각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이 대리투표 자체인가, 아니면 발달장애 가족이라는 생활정치 집단이 조직된 목소리를 갖게 되는 상황인가.
이것을 정치 뉴스와 선거 분석을 과하게 들여다보는, 이른바 ‘정치병 환자’인 나의 지나친 해석이라 치부하면 그렇게 하시라. 그러나 이러한 의심을 품게 만드는 구조가 실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발달장애 가족들은 이미 한국 사회 복지 시스템의 균열을 가장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들이다. 성인 이후 돌봄 단절, 특수학교와 특수교사의 부족, 평생교육의 부재, 부모 사후 대책 미비. 이 문제들은 추상적인 정책 브리핑 용어가 아니다. 누군가의 밤잠이고, 생존이고, 내일이 있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부모들은 오랫동안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으며 많은 경우, 그 요구는 특수한 혹은 소수의 민원 정도로 취급되거나,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이 없는 집단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려났다.
그렇다면 만약 발달장애인이 부모와 함께 안정적으로 투표할 수 있고, 참정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며, 가족 단위의 정치적 목소리가 조직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그 순간 이 모든 의제는 감성 복지 캠페인이 아니라 실제 표가 걸린 정치 의제가 된다. 예산이 달라지고, 공약이 달라지고, 정치인의 태도가 달라진다.
국가는 발달장애인에게 독립적인 시민으로 살아가라고 말하며 탈시설과 자립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투표소에서는 혼자 하라고 하면서 필요한 장치는 주지 않고, 도움을 받으면 순수성을 의심한다. 이 얼마나 모순된 구조인가.
발달장애인은 투표소에서조차 증명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는 것,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시민이라는 것.
그러나 민주주의는 원래 완벽하게 독립적인 인간만 참여하는 제도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영향을 받는다. 가족에게, 사회에게, 두려움에게, 욕망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순수하게 투표하느냐가 아니라, 가능한 많은 시민이 배제되지 않는 것이다.
4년 후에는 중학생인 내 딸이 생애 첫 투표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나는 그 투표소가 딸을 환영하는 곳이길 바란다. 딸의 손을 잡고 들어갔을 때 우리가 의심의 시선을 통과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 그냥 시민이 오는 곳으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 곳으로.
한국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감동적인 복지 캠페인의 주인공으로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표가 되어야 움직이는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표가 아직 표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모든 논의의 불편한 진실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출처 : 에이블뉴스(https://www.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