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집은 왜 시설이어야 하나”…올해도 응답 없는 외침
24회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
장애인의날인 20일 낮 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종탑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설에서만 살아야 합니까.”(김동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2002년 장애인 이동권·탈시설 투쟁이 본격화하며 시작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스물네번째 맞이하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모인 장애인과 시민 1500여명이 한결같은 물음을 되풀이했다. ‘왜 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지역 사회에서 평범하게 살 수 없는가?’ 최근 장애인 탈시설과 자립 지원 정책의 마중물로 여겨지는 ‘장애인자립지원법’(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한 천주교 등의 반대 움직임 앞에 장애인과 활동가들의 질문은 한층 절박했다.
전국장애인탈시설연대(탈시설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은 20일 마로니에 공원에서 ‘2025 제24회 420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전국집중결의대회’(결의대회)를 1박2일 일정으로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선 “장애인들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자”는 외침이 이어졌다. 무대에 오른 발달장애인 활동모임 ‘피플퍼스트’의 박연지 활동가는 탈시설 경험을 이야기하며 “야식으로 치킨을 먹고, 친구들을 불러 내가 해 준 냉파스타를 먹여주는 게 좋다”며 “(시설에선) 내가 무능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자립을 하고 나선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마로니에 공원에서 600여m 떨어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종탑 벽면에도 ‘천주교는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는 문구가 적힌 큰 펼침막이 나붙었다. 이 종탑 위에선 탈시설 운동 활동가 2명과 탈시설 장애인 1명이 지난 18일부터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 차별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대항로’라는 이름까지 붙여진 서울 대학로의 상징성을 고려해, 농성 장소로 이곳에 있는 혜화동성당을 택했다. 전날엔 세찬 비바람을, 이날 오후엔 따가운 햇볕을 얇은 텐트 속에서 버틴다고 했다. 이날 결의대회 행진 도중 고공농성을 응원하려 종탑 아래 모인 결의대회 참석자들과 경찰 사이 대치가 2시간가량 이어졌다. 참석자들이 현수막을 펼치려 하자 경찰이 이를 빼앗았고, 참석자들은 “탈시설 권리 목소리를 막지 말라”고 외치며 반발했다. 펼침막에는 ‘한국 천주교는 시설수용 말고, 장애인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권리 보장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2025 제24회 420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전국집중결의대회에 참석한 장애인과 시민들이 혜화동 성당 고공농성에 나선 이들을 응원하려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김가윤 기자
지난 2월 국회에선 장애인 자립지원 실태 조사와 통합지원센터 설치 등을 규정한 장애인자립지원법이 통과해 2년 뒤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전국 175개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천주교가 조직적인 반대 청원 서명을 받고 있다. 천주교 사회복지위원회는 지난 17일 탈시설연대에 공문을 보내 “자립 이후의 돌봄 공백, 생명권 침해 가능성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탈시설 이후 ‘돌봄 공백’이 중증 장애인의 생명권을 위협한다는 의미다. 탈시설연대는 이런 우려는 사회적 지원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공농성 중인 박초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는 이날 결의대회 중 통화 연결에서 “시설을 막 나올 땐 걱정됐지만 조바심에 불과했다. ‘탈시설 해도 괜찮다’는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며 “탈시설 한 동료가 본인의 삶을 온전히 찾을 수 있게끔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처:한겨래(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33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