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타고 가이드러너 손잡고…장애 ‘무의미’한 마라톤 출발!
이민규(40)·홍은녀(40) 부부는 주말마다 6.5㎞ 길이의 남산 북쪽 순환로 달리기 코스를 두세 바퀴씩 뛴다. 장거리 훈련, 언덕 훈련, 체력 훈련 등 여느 러너와 비슷한 훈련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달리는 ‘가이드 러너’가 있다는 점이다. 50∼70㎝ 끈을 이어잡고 부부와 함께 뛰는 가이드 러너는 반보 뒤에서 방향을 알려주거나, 끈을 팽팽하게 해 방향 감각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시각장애인인 이민규·홍은녀 부부는 2017년부터 시각장애인 마라톤 동호회 ‘브이엠케이’(VMK)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라톤 8년 차지만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마라톤 대회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일부 대형 마라톤 대회를 제외하고는 접수 과정부터 달리기 코스까지 장애인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이씨는 14일 한겨레에 “러닝 붐이 일면서 (인터넷) 참가 접수를 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며 “선착순 안에 들어야 접수할 수 있는데 클릭 속도가 비장애인보다 느리다 보니, 접수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10년차 러너인 척수장애인 이승일(53)씨도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비장애인 위주의 마라톤 행사에도 참여해봤다. 경사가 심하거나 나무다리가 있는 코스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단법인 ‘무의’와 키움증권은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맞아 오는 19일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물빛무대 앞 광장에서 장애-비장애 통합 마라톤 행사 ‘키움런’을 연다.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 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장애 접근성 지도를 만들거나 상점 앞에 경사로를 설치하도록 하는 사업(모두의 1층 프로젝트) 등을 해왔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마라톤 등 보편화된 야외 행사에서도 장애인들은 물리적인 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참여에서 소외된다”며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참가자의 접근성을 확대한 행사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서 키움런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참가 신청과 부대 시설 등 행사 전반에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참가 신청 누리집은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해 제작했고, 모든 문구는 성인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의 언어 감수를 받았다. 행사장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쓸 수 있는 차량과 탈의실이 있고, 신경다양성 장애가 있는 러너를 위한 심신안정실도 준비된다. 동료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함께 러너’도 대기한다. 모든 무대 행사에는 한국농아인협회 지원을 받아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자원봉사자는 장애 유형별로 대응 방식을 교육한 뒤 투입할 예정이다. 행사 뒤에는 장애인 참가자의 평가를 받아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장애인 참가자들은 이번 대회를 반기며 장애인 친화적인 마라톤 대회가 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승일씨는 “휠체어를 탄 채 참가자 사이에 있으면 사고 날 위험이 있어 우리는 항상 맨 뒤에서 출발한다. 출발점에서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라며 “장애인 러너들이 늘고 있는 만큼 국내 유서 깊은 마라톤 대회들부터 장애인 부문을 도입하는 등 비장애인 중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 런던 마라톤, 뉴욕 마라톤 대회 등은 휠체어 부문을 따로 두고 있고, 특히 런던 마라톤은 2023년부터 휠체어 부문 상금을 비장애인 부문과 동일하게 인상했다.
출처:한겨레(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235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