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e스포츠 우승자들 상금도 ‘먹튀’?…‘횡령 사건’에 뒤집힌 연맹
지난 8월 16일, '제2회 용산장애인 e-스포츠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장애인들이 e-스포츠를 통해, IT에 친숙해지고 더 나아가 일자리 같은 자립 기회까지 얻게 한다는 취지로 열린 행사였습니다.
청각, 지적 발달 등 장애를 가진 선수 120명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습니다. 행사에는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권영세 국회의원 등 40여 명의 내빈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3개 종목에서 1·2·3위가 뽑혔고, 우승 선수별로 많게는 100만 원에서 적게는 20만 원의 상금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대회가 개최된 지 두 달이 넘어가는데, 우승 선수들이 상금을 못 받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 차일피일 미뤄진 상금 지급…그리고 사라진 사무국장
이번 행사의 주최는 '용산장애인복지관', 그러나 대회 상금 지급은 공동주관을 맡은 '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이하 중앙연맹)'에서 맡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선수들은 상금 지급과 관련된 내용은 중앙연맹의 실무자인 이 모 사무국장에게 문의했다고 합니다. 지난 9월 초부터 상금 지급 관련 문의를 했지만, 이 씨의 대답은 시원찮았습니다.
잇따르는 선수들의 독촉에 이 씨는 곧 공지하겠다더니, 나중에는 상금 지급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내달라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우승 선수들은 통장 사본이나 관련 정보를 이 씨에게 제출했지만, 상금 지급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모두가 서류 제출을 하지 않은 탓에 지급이 미뤄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씨는 선수들과의 대화방에서 잠적해 버렸습니다. 지난 9월 27일 남긴 메시지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이어진 선수들의 문의에 이 씨는 답이 없었습니다.
■ '발칵' 뒤집힌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컴퓨터 관련 자료까지 삭제"
그러다 10월 5일, 일이 터졌습니다.
연맹 측에서 선수들에게 뜬금없는 공지를 합니다. 이 씨가 더는 사무국장이 아니며, 이 씨와 금전적 거래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중앙연맹에서 사실상 실무를 담당했던 이 씨가 선수들 상금을 포함한 중앙연맹 자금을 횡령하고 9월 말쯤 도주한 겁니다.
말 그대로 중앙연맹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횡령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지역 장애인e스포츠연맹들 관계자들에게 각종 사유를 대며 금전을 받아 간 겁니다. 한 지역 연맹에는 '장애인 e스포츠 선수 훈련실 구성'을 명목으로 650만 원을 받아 가거나, '장애인 e스포츠 센터를 건립한다' 등의 이유를 대며 돈을 빌렸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이 씨가 빼돌린 금액은 최소 수억 원대로 추정되는 상황.
이에 중앙연맹은 선수들 상금 및 대회 인건비 등도 정산이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심지어 중앙연맹 직원들의 급여도 제때 정산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게다가 이 씨가 도주하면서 중앙연맹 컴퓨터 있던 각종 결산·운영 자료 등을 삭제한 탓에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도 취합·파악 중입니다.
지역 연맹 관계자는 "중앙연맹 횡령 관련 액수는 비교적 크지 않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관계자들에게 빌리고 갚지 않은 금액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선수들 "실무자 한 명에 연맹 휘청거려"…경찰, 사무국장 추적 중
현재 도주한 이 씨에 대해서는 약 6건의 고소 건이 경찰에 접수됐고, 충남 천안동남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을 수사 중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고소인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으로, 이를 마치면 정확한 피해 액수 등이 특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씨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이 씨가 경찰의 출석 요구에도 출석하지 않아, 경찰은 이 씨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승 선수들의 상금은 현재 지급이 완료됐습니다. 중앙연맹에서 당장 상금을 지급할 수 없자, 지난달 중순쯤 용산장애인복지관이 대신 지급한 겁니다.
용산장애인복지관 측은 "나중에 중앙연맹 쪽에서 상황이 정리가 되면 정산을 받더라도, 선수들 피해를 고려해 우리가 먼저 선지급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들의 실망감은 큽니다. 한 장애인 e스포츠 선수는 취재진에게 중앙연맹의 운영이 이렇게 허술할 줄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중앙연맹이 휘청거릴 정도의 상황이 될 때까지, 왜 실무자가 한 명이었는지, 업무 분담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합니다." |
갑자기 닥친 횡령 사건에 중앙연맹의 정상화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 수밖에 없는 상황. 당장 향후 대회 개최 등이 불투명해지면서, 결국 피해 여파는 장애인 e스포츠 선수들에게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KBS뉴스(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02289)